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텐잔 히로요시 (문단 편집) === 입단 ~ 영 라이온 (1991 ~ 1995) === [[파일:영라이온텐잔.jpg]] 어릴 적 몸이 약했던 텐잔은 체격이 크고 몸이 건강한 사람을 동경하여 프로레슬링의 꿈을 품게 되었고, 무사히 성장하여 교토부립 야마시로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디빌딩과 농구를 한 후 당시 야마모토 코테츠가 열였던 신일본 프로레슬링 학교[* 1988년 4월 야마모토 코테츠가 설립했으며, 프로레슬러 지망이지만 신장이 모자라다던가 경력이 부족한 프로레슬러 지망자를 야마모토 코테츠가 직접 가르쳐서 데뷔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. 약 2년간 유지되었으며, '도호쿠의 영웅' [[더 그레이트 사스케]], 텐잔, '싸우는 철학자' [[니시무라 오사무]], '파직파직 파이터' [[이케다 다이스케]] 등이 여기 출신이다.]를 거쳐 신일본에 입단, 1991년 1월 11일 본명인 야마모토 히로요시로 마츠다 오사무와 데뷔전을 치뤘다. 워낙 순박한 성격으로 영 라이온 생활동안 [[하시모토 신야]]와 [[수신 선더 라이거(프로레슬러)|수신 선더 라이거]], 니시무라 오사무 등에게 온갖 장난을 당하고, 사사키 켄스케와 '광견' 오하라 미치요시(小原道由)[* 수신 선더 라이거 유튜브의 최초 게스트로 출연해서 신인 시절 썰을 풀던 텐잔이 이름은 묵음 처리 됐지만(텐잔은 묵음처리조차도 필요없다고 할 정도였다.) "이자식만큼은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다"라고 말한 유일한 사람이다. '그 인간'이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천벌을 받은 거라고 말할 정도였는데, 오하라가 2003년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고 그 후유증으로 은퇴까지 했기 때문에 오하라가 확정적이다.]에게 가혹한 똥군기를 겪으면서도 이때부터 비슷한 시기 입단한 영원한 파트너 [[코지마 사토시]]와 태그로 영 라이온 생활을 버텨냈다. || [[파일:영라이온배우승텐잔.jpg]] || || 영라이온배 우승 당시. 오른쪽은 결승전 상대 [[니시무라 오사무]]. || 그리고 1993년 3월 6년만에 부활한 [[영 라이온배 쟁탈 리그전]]에 출장한 텐잔은 23일의 결승전에서 니시무라 오사무에게 승리를 거두고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고, 6월부터 유럽으로 해외 무사수행을 떠나서 7월 3일 [[오스트리아]]의 CWA에서 [[랜스 스톰]]에게 승리하고 초대 CWA 세계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[* 랜스 스톰에게 약 20일 뒤 타이틀을 빼앗겼다가 10월에 한 번 더 차지했으며, 또 20일 뒤 독일 하노버에서 다시 랜스 스톰에게 벨트를 넘겨주고 단체를 떠났다. 벨트는 2000년에 사라졌다.]의 활약을 하던 야마모토는 [[캐나다]] [[캘거리]]에 있던 신일본 북미지부장 다이고 테츠노스케[* 스모 선수, 프로레슬러 출신 부커. 주로 캐나다에서 활동했으며 1984년부터 신일본 북미 지부장으로 해외 원정 선수들의 뒤를 봐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.]에게 가서 몸을 단련하고, 다이고의 권유로 링네임을 텐잔 히로요시(天山広吉)로 바꾼 후 약 1년 반만인 1995년 1월 4일 [[신일본 레슬킹덤|95'도쿄돔 BATTLE7]]에서 [[나카니시 마나부]]에게 승리하며 복귀전을 치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